매듭과 함께 풀린 생명줄, 송전탑 도장작업 중 추락재해
처음엔 위험한 현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또한 적응하면 일상이 되곤합니다. 하지만 안전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허공에 매달린 채 진행되는 송전탑 도장작업
송전탑의 도장작업은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항공기 충돌 방지를 위한 항공도장과 주변환경과의 조화를 목적으로 하는 환경도장입니다. 환경도장은 또 다시 상도작업(회녹색)과 하도작업(회백색)으로 구분됩니다. 일용직 근로자인 조 씨는 송전탑 환경도장 하도작업을 위해 송전선로 건설현장에 출근했습니다. 처음에는 송전탑을 올라 도장작업을 하는 일이 두렵고 내키지도 않았지만, 오래되어 적응하니 꽤 할만 했습니다. 다른 일에 비해 보수도 괜찮은 편이라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조 씨는 이날 3명의 동료와 함께 철탑의 네 면을 각각 하나씩 맡아 도장작업을 했는데요. 철탑 상부에 주로프 4개를 설치한 후, 달비계를 타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에어건(Air gun)으로 뿜칠을 하면 되었습니다. 걸이용 안전대를 착용하고 붓으로 도장작업을 했던 전날과 달리, 이날은 약 78m 높이의 철탑 상부에 주로프를 달았습니다. 조 씨에게 주어진 작업용 로프는 각각 50m와 30m였는데요. 꼭대기부터 지면까지 한 번에 이어지는 길이면 좋겠지만, 길이가 짧으면 두 개를 연결해 사용하곤 했기에 크게 상관하지 않았고 평소처럼 로프 두 개를 매듭지어 묶은 후 철탑 상부에서 줄을 늘어뜨리고, 달비계를 걸었습니다. 일상적인 작업이라, 관리자 역시 조 씨가 매듭으로 이은 로프를 따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로프 하나, 안전대 하나가 전부였다
안전모와 안전화, 에어건을 챙긴 조 씨는 달비계에 엉덩이를 걸치고 도장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오후 2시 20분경, 한참을 내려온 것 같아 아래를 내려다 보니 아직도 조 씨가 도장해야 할 철탑은 15m 정도 남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남은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에어건을 들고 다시 철탑으로 눈을 돌린 순간, 조 씨는 잠시 기우뚱하는 듯하더니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조 씨를 붙잡고 있던 유일한 생명줄인 주로프의 매듭이 풀리고 만 것입니다. 추락하는 조 씨를 잡아줄 수 있는 안전장치는 그 어디에도 없었고 안타깝게도 조 씨는 죽음의 나락으로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고,막을 수는 없었을까?
| 2중, 3중의 안전장치로 막을 수 있었던 사고 |
1) 작업경험이 많았던 조 씨는 위험에 둔감해져 있었습니다. 위험한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 씨는 이미 일상처럼 하던 일이라 매듭지은 로프가 풀릴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습니다.
2) 조 씨의 매듭이 단단히 체결되었는지 확인하지 않은 작업관리자 또한 책임을 벗을 수 없습니다.
3) 현장에는 작업자의 추락에 대비한 안전장치나 구명줄 또한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작업자의 목숨이 로프 하나, 매듭 하나에 달려 있다면 그 누구도 선뜻 작업에 나설 수 없을 것입니다.
허공에 매달린 채 작업이 진행되어야 하는 송전탑 도장작업의 경우, 2중, 3중의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주로프 외에 구명줄이나 낙하지점에서 충격을 완화시켜줄 완충장치 등이 있었다면 조 씨의 사고는 사망으로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조 씨가 추락한 지점은 거대한 바위가 곳곳에 있었던 현장으로, 추락 시 생존가능성은 더욱 낮은 곳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매듭으로 연결할 필요가 없는, 넉넉한 길이의 로프가 있었다면 매듭이 풀리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규정에 부합하는 로프를 준비했다 하더라도, 매듭을 지어 로프를 연결한다면 불확실한 위험요소가 하나 생기는 셈이므로 미연에 제거하는 것이 사고를 방지하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