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을 잃고 사다리 아래로 추락하다
류 씨는 한 칸 한 칸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습니다. 천장 가까이에 오르니 아래가 아득했지만, 생각보다 사다리는 꽤 견고한 것 같았습니다. 몸을 조금씩 움직여도 사다리가 잘 버티자 온수 배관을 점검하는 류 씨의 손놀림에는 어느새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배관 점검을 마친 류 씨는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녹을 방지하기 위한 윤활 방청제였습니다. 윤활 방청제를 밸브 쪽에 뿌리고 난 뒤, 다시 허리춤으로 챙겨 넣으려던 류 씨. 그 순간, 손이 미끄러지면서 윤활 방청제를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떨어지는 물건을 향해 본능적으로 손을 뻗자 사다리가 균형을 잃고 넘어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전모조차 착용하지 않은 상황. 머리부터 바닥에 곤두박질친 류 씨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습니다.
점심시간에도, 오후 작업 시간에도 류 씨가 나타나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동료들은 아파트 곳곳을 샅샅이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5시, 기계실 바닥에 쓰러진 류 씨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뇌출혈과 저체온증으로 인해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