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고 4. 2012년 구미 불산유출 사고
“본 내용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실제 산업재해 사건을 모티브로 허구적으로 구성한 글입니다.
이 글은 산업재해는 회사나 관리자, 근로자 등이 안전과 관련한 원칙을 준수하면 사고를 예방하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추석 연휴 이틀 전이었다. 이미 동작 빠른 사무직들은 휴가를 낸 사람도 있었다. 다른 이들도 내일 오전쯤 되면 대충 일이 마무리될 터이고, 다들 고향 앞으로 차를 몰거나 식구들이 둘러앉은 저녁상을 먹으며 명절을 즐길 예정이었다.
“내일 어디 가?”
“저희 집이 큰집이잖아요.”
“좋겠네 나는 본가가 강원도고 처가가 대전이야. 명절마다 고민이라고.”
들뜬 목소리들이 작업 대기실을 울리는데 한 젊은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저는 스트레스 만빵이에요. 명절날만 되면 장가는 언제 가느냐고 묻는 통에 아주 죽을 지경이라니까요.” 새로 들어온 신참 박씨였다.
여덟 명 남짓 모여 있던 근로자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그깟 장가, 가면 될 거 아니냐는 힐난부터 그 심정 이해한다는 동정론과 내가 하나 소개시켜 줄까 하는 오지랖들도 이어졌다.
노총각 박씨는 여전히 볼멘 소리로 대답했다.
“사귀는 사람이 있긴 한데 아직 인사갈 처지는 못 된단 말입니다.”
이번에는 격려와 응원의 탄성이 터졌다.
“우오오..... 사귄지 얼마나 됐어? 진도는 얼마나 나갔어?”
그러자 머리를 긁는 박씨.
“사귀기로 한 지 보름......”
또 한 번 야유와 조소의 비바람이 몰아치고 박씨도 함께 웃어 버리던 즈음 그날의 작업이 시작됐다.
“오늘은 저 탱크 두 개에서 불산을 빼낸다! 농땡이 피우면 하루 안에 일 못 끝내니까 빠릿빠릿하게 하자고. 오늘 다 끝내면 오늘 내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쏜다.”
여자친구 사귄 지 보름 됐고, 입사한 지는 한 달 반이 채 안된 신출내기 박씨가 동료에게 물었다.
“대충 들어보긴 했는데 불산이 정확하게 뭡니까? 오늘 이 작업은 처음이라.”
그러자 화학공장 20년 경력으로 자신이 해 온 분야에 있어서는 대학 화학과 교수도 찜쪄먹는다는 자부심에 그득한 왕고참 윤씨가 나섰다.
“불산은 플루오린화 수소산이라는 거야. 불화수소(HF)의 수용액이지. 대부분의 무기·유기화합물을 녹이는 산성 물질이야. 공장에서 촉매제나 탈수제로 이용되는 건데 이게 대기 중의 수분하고 결합되면 무서운 폭탄이 돼요. 우리 몸에 뿌려지면 화상은 물론이고 뼈까지 녹인다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줄줄 꿰는 왕고참 윤씨의 설명에 신참 박씨의 얼굴이 굳어졌다. 문득 자신이 두른 작업 장비라는 게 작업복과 마스크 뿐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위험한 놈이면 무슨 방호복 같은 거 입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또 아까와 같은 폭소가 터져 나왔다. 웃음의 색깔은 아까와 달랐다. 신참이 참 물정 모른다는 타박과 그런 건 우리 사전에 없다는 자신감(?)이 웃음의 이유였다.
“이거 우리는 매일같이 하는 일이야. 방호복 있으면 좋겠지만 뭐 주지도 않고.”
“그래도 뼈까지 녹인다면서요?”
“살에도 안 닿게 할 건데 뼈는 뭔 소리야. 뭐 ‘뼈와 살이 타는 불산’인가? 여기 온지 얼마나 됐어?”
“한 달 반이요”
또 한 번 웃음이 출렁였다.
“차차 익숙해질 거야. 회사가 방호복 안 준다고 일 안하면 당신만 잘릴 뿐이지 뭐. 우리가 조심해야지. ”
머쓱해진 박씨 역시 동료들을 따라 탱크 앞으로 향했다. 근로자들의 숙달된 손길에는 빈틈이 없었고 박씨 역시 감탄해 마지않았으나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형님들은 방호복 입으신 적이 한 번도 없나요? 저는 예전 회사에서 이런 일 할 때는 꼭 입고 해서.”
답은 간단했다. 회사에서 방호복이나 방호장구를 지급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장비는 곧 돈이었고 숙달된 인력에게는 장비가 필요 없으니 곧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괴상한 삼단논법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박씨에게 반장 최씨가 소리를 질렀다.
“뭔 일 안난다. 내가 장담할게.”
하나의 탱크로리에서 불산을 빼내는 작업은 문제 없이 끝났다. 이제 탱크로리 하나만 비우면 작업 끝이었다. 한창 작업이 진행되던 오후, 갑자기 동료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던 신참 박씨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뭐가 새 나오는데요?”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작업 중이던 근로자들은 문제가 발생한 사실을 알았다. 작업 도중 한 근로자가 원료 밸브를 발로 밟았고 그 통에 밸브가 열린 것이다.
처음에는 피시식거리면서 새어나오던 불산은 곧 강한 압력으로 허연 연기처럼 뿜어져 나와 근로자들을 휘감았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근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하려 했지만 소용 없었다. 함께 일하던 근로자들이 하나 둘 정신을 잃었지만, 신참 박씨와 그에게 불산의 무서움을 들려 주던 윤씨는 아직 정신을 잃지 않고 있었다. 윤씨는 힘이 빠져나가는 팔다리를 끈질기게 움직이며 밸브를 잠가 보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그는 꿈틀거리고 있던 박씨에게 고함을 질렀다.
“잠..... 가....야 .돼..... 안그러면 이 일대가...... 끝장나.”
그러나 그로부터 몇 초 지나지 않아 윤씨 또한 고개를 떨어뜨렸고 불산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모두 쓰러져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다.
일단 봉인에서 풀려난 불산이라는 괴물은 이들만의 목숨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불산은 공기 중에서 피부나 점막에 침투할 수 있으며, 한 두 모금만 마셔도 폐경련과 신경계 교란까지 일으키는 독성을 지니고 있었다. 사고 현장에 뛰어든 소방대원은 물론 근방의 주민들까지 불산의 공포에 떨어야 했고 그 지역 농산물도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인근 공단 공장들까지도 일정 기간 문을 닫아야 했다. 한순간의 실수가 가져온 비극이었다.
사고 원인을 수사하기 위해 CCTV를 들여다보던 경찰관이 밸브를 발로 밟은 후 불산이 새어나오는 장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원인이군. 저 사람이 실수한 겁니다. 저 사람이 밸브를 밟은 뒤에 연기 새나오는 거 보세요.”
곁에 있던 경찰관이 말을 받았다.
“그래서 저 사람 책임이라고 쓸 거야? 그건 아니지. 사람은 언제나 실수를 해. 실수를 했을 때 그 위험을 줄여 주는 게 시스템이라고. 불산 때문에 일대가 다 뒤집히고 피해자들이 수천 명인데 지금 불산 다루는 저 사람들 옷 입고 있는 거 봐. 작업복에 마스크잖아. 더 돌려 봐. 거기! 이 사람. 윤성실씨. 지금 뭐하고 있는 거로 보여? 죽어가면서 밸브 잠그고 있어. 저 사람한테 방호복이라도 있었으면 죽지도 않았을 거고, 피해가 이렇게 크지도 않았을 거라고. 사람 참 안됐네. 죽어가면서도 저렇게..... 참. 유족들에게 유류품은 다 돌려 줬지?”
“네 별다른 건 나온 게 없고 백화점 상품권이 한 삼십만 원어치 나왔네요. 추석 선물하려던 건가 봐요.”
노총각 박씨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