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타고 내리는 건설용 리프트
건설 현장에서 보기 드문 30대의 젊은 여성 근로자인 왕 씨는 형틀목공이다. 왕 씨가 소속된 B 사는 A 사가 시공 중인 지상 30층 11개동 규모의 공동주택 신축 현장에서 철근콘크리트 공사를 하청 받았다. 부지런한 왕 씨는 이른 아침 집을 나서 7시가 되기 전 공사 현장에 도착했다. 10분 후, 동료 이 씨가 출근하며 왕 씨에게 ‘또 1등이냐’며 인사를 건넸다. “에이 아저씨, 저는 젊잖아요”라고 받아친 왕 씨. “하긴, 화끈하게 일하는 거 보면 남자 다 저리 가라지. 그래도 너무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히 해.” 일하는
게 시원시원하지만 조심성이 부족한 왕 씨의 급한 성격이 마음에 걸렸던 이 씨가 말 나온 김에 왕 씨에게 충고를 건넸다.
오전 7시 10분. 이날 아침 툴박스미팅(Tool Box Meeting. TBM)에서 각자의 작업 내용을 확인하고 조회가 끝나갈 무렵, 한 작업자가 안전관리자에게 질문했다. “요즘 현장에 갑자기 전기가 나가서 답답할 때가 많은데, 조치가 필요한 거 아닙니까?” 그러자 안전관리자는 “요즘 날씨가 추워서 그렇습니다. 전열기를 많이 쓰니까 순간 사용량이 올라가서 차단기가 떨어지는 거예요. 요 때만 지나면 괜찮아 지니까 조금만 참읍시다”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차단기의 용량 부족으로 인한 잦은 정전
TBM이 끝나자 왕 씨는 이 씨와 함께 101동으로 갔다. 20층 공사현장 갱폼에 박리제를 칠하기 위해서였다. 작업을 한창 진행하던 두 사람은 보양천막 보수작업을 위해 110동 23층에도 갔다 오고, 점심 식사 후에는 콘크리트 타설 전에 청소하라는 지시를 받고 102동 17층으로 갔다. 오후 1시 무렵. 왕 씨와 이 씨가 102동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조명이 꺼지고 기계들의 작동이 멈췄다. “뭐야! 도대체 오늘 몇 번째야?” 하는 신경질적인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잠시 후 다시 전기가 들어오자 현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갔다. 두 사람이 102동에서 청소를 마친 시각은 오후 2시 30분경. 이들은 101동 20층에서 하던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102동을 내려와서 101동 건설용 리프트에 다시 올라탔다. 20층을 향해 빠르게 올라가는 리프트. 그런데 12층과 13층 사이에서 리프트가 갑자기 제자리에 멈춰 섰다. 또 정전이었다.
놀란 마음에 눈만 껌뻑거리는 이 씨에게 왕 씨가 말했다. “아저씨, 제가 먼저 12층으로 내릴 테니 아저씨도 저 따라 오세요.” 성격 급한 왕 씨, 언젠가 TBM에서 리프트 안전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지만, 머리 속은 이미 리프트를 빠져나가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허, 그러지 말자고. 큰일 나. 작업반장한테 전화부터…” 그러나 왕 씨는 이 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리프트 연동 출입문을 억지로 열고 있었다. 건물쪽 출입문 안전장치인 T바를 인위적으로 해체하고 출입문의 일부를 연 왕 씨. 건물쪽에 설치된 출입문 중간구조물을 밟고 12층 바닥으로 내리려고 다리를 뻗었다. 그런데, 왕 씨가 한쪽 다리로 건물쪽 구조물을 밟자 왕 씨가 건물을 딛고 발로 미는 모양새가 되어 리프트가 통째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왕 씨는 순식간에 중심을 잃고 리프트와 건물 사이 틈으로 빠져버렸다. 왕 씨는 안전모와 안전화도 꼼꼼히 착용하고 있었지만 33m 아래 승강로 피트 바닥으로 추락한 왕 씨를 지켜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이 사고, 막을 수는 없었을까?
| 안전수칙을 반드시 지키도록 철저한 교육이 필요 |
건설용 리프트가 많이 이용되는 현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B 사는 근로자에게 건설용 리프트 방호장치의 기능 및 사용에 대한 특별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았다. 또한, 전열기 등 부하설비가 동시에 가동되면서 잦은 정전이 발생됐지만, 차단기 용량 재검토 등 정전 예방을 위한 조치와 관리를 하지 않았다.
사고 방지를 위해서는
1)특별안전교육을 철저히 실시해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을 금해야 한다. 탑승한 건설용 리프트가 비정상적인 상태로 정지한 경우 일체의 조작행위를 금지하고 안전담당자에게 신속히 연락을 취하는 등 안전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도록 한다.
2)안정된 전원 공급체계를 갖춰야 한다. 현장의 전체적인 전기 사용현황을 다시 파악하고 이에 맞는 적절한 용량의 차단기를 선정·교체함으로써 갑작스러운 정전을 예방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