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수록 세지는 밧줄
원시 시대에 가장 유용한 발명품은 뭐였을까? 돌을 다듬어 만든 돌칼과 돌도끼였을까? 음식과 물을 담을 수 있는 토기였을까? 모두 맞다. 그러나 가장 유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원시 시대 발명품이 있다. 바로 밧줄이다. 돌칼, 돌도끼와 달리 썩어 없어지는 밧줄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긴 무리였을 터. 다만 화석을 통해 밧줄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피라미드의 비밀, 밧줄이 답이다?
밧줄은 실을 꼬아 만든 튼튼한 줄을 말한다. 사실 자연에는 이 미 밧줄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덩굴은 주위의 단단한 물체를 빙빙 휘감아 타고 오르며 자라는 성질이 있는데, 다른 물체가 없으면 덩굴끼리 서로 휘감으며 자라서 밧줄이 된다. 이것을 잘라 사용한 것이 최초의 밧줄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누군가 ‘ 실을 꼬는’ 창의적인 시도를 하면서, 인간은 드디어 밧줄을 발 명하게 된다.
밧줄은 원시 시대 그 어떤 도구보다 쓰임새가 많았을 것이다. 이 발명품으로 인간은 무언가를 연결해 묶고, 지탱할 방법을 터득하게 됐다. 밧줄은 활시위, 낚싯줄, 그물 등이 되어 사냥에 큰 도움을 줬다. 또 통나무를 엮어 뗏목을 만드는 데 쓰기도 했 다. 인간이 동굴에서 벗어나 움막 형태의 집을 갖게 됐을 때, 밧 줄은 기둥이나 천을 단단히 고정하는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밧줄을 제조하는 도구까지 등장했다.
줄보다 밧줄이 더 강해
단순히 실을 꼰 것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 런데 이건 잘 모르고 하는 말씀이다. 꼬는 기술을 발명한 덕분 에 우리는 긴 줄을 갖게 됐다. 예를 들어 실을 꼬지 않고 30미터 짜리 줄을 만들려면, 30미터짜리 실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명주 같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이렇게 긴 실을 얻을 방법은 없다. 자연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섬유의 길이는 대부 분 수 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실을 꼬아 섬유를 연결하면 어떤가. 길이 1미터밖에 안 되는 지 푸라기를 꼬아 수백 미터에 달하는 새끼줄을 만들 수 있다. 즉 꼰다는 것은 긴 줄을 만들 수 있는 핵심 기술인 셈이다. 가장 원 시적인 밧줄부터, 최첨단 복합재료 밧줄까지 실을 꼰다는 기 본 원칙은 똑같다. 예상컨대 초기 밧줄은 이런 이유로 꼬아 만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밧줄을 사용하다 보니 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놀 랍게도 밧줄은 똑같은 두께의 단일 줄보다 더 튼튼하다. 쉽게 말해 단면적 10cm2 의 줄보다 단면적 1cm2 의 줄 열 가닥을 꼰 것이 더 튼튼하다.
유조선도 들어 올리는 밧줄
이렇게 놀랍고, 쓸모 많은 밧줄 기술은 계속 발전했다. 가장 중 요한 변화는 밧줄을 만드는 재료에서 시작했다. 초기에는 천연 섬유로 밧줄을 만들었지만, 차차 나일론 같은 합성섬유가 더 많이 쓰이기 시작했다. 합성섬유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섬 유와 달리 실을 무한정 길게 뽑을 수 있어 밧줄이 더 튼튼해진 다. 천연섬유는 물을 흡수해 밧줄 자체 무게도 무거워지고, 강 도도 약해지는 단점이 있지만, 합성섬유는 물을 튕겨 내도록 만들 수 있다. 예전에 천연섬유로 만들었던 밧줄 대부분이 합 성섬유로 대체됐다.
금속도 밧줄의 재료로 쓰인다. 금속을 가늘게 뽑아 만든 밧줄 은 강도가 뛰어나고, 특히 외부 충격에도 쉽게 마모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최근에는 금속과 합성섬유를 혼합한 복합재료 밧 줄까지 등장했다. 최첨단 복합재료 밧줄 몇 가닥이면 수백 톤 에 달하는 선박까지 번쩍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다.
원시 시대에 등장한 발명품이 급변하는 최첨단 기술 속에서도 당당히 살아남아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예는 흔치 않다. 이는 밧줄이 가진 단순함의 미학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실을 꼬는 단순한 과정으로 만들지만, 응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한 밧줄. 그 변화가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